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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삶의모터

2015.01.28. 뮤지컬 로빈훗

 ▼ 오늘의 캐스트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1. 난 이런 극을 보면, 어디까지가 역사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가 궁금하더라.

 

영국 역사에 무지한 인간이 간략한 웹서핑 후 알아낸 것에 의하면, 사자왕 리처드 1세-실존인물, 그의 뒤를 이어서 왕위에 올랐던 리처드의 동생 실지왕 존-실존인물, 사자왕 리처드의 사생아이면서 유일한 자식 필립(...까지도 실존인물이라고 해야 할지? 역사서에는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적 상상력으로 가공당하는(!) 위치의 인물인 것 같기도. 이를테면 전쟁터로만 나돌면서 정식 후계자가 없었던 아버지 리처드 1세와 정치적 파트너였다가 나중에는 앙숙으로 변한 프랑스의 필립 2세가 동성연인이었다(...)는, 절절한 연정으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름도 필립이라는 뭐 그런... -_-;;;) 실제로는 리처드 1세 이후에 존과 왕위 다툼을 한 것은 리처드와 존의 형이었던 제프리의 아들 아서였기 때문에, 뮤지컬 로빈훗에서의 필립의 캐릭터는 역사에 잠깐 언급되는 프랑스 코냑 땅의 영주 필립과 12살 된 존의 조카 아서의 짬뽕인 듯.

 

그리고 나머지 캐릭터는 모두 허구. 로빈훗도 대락 12세기 때부터 구전되어 오던 이야기 속 주인공으로, 조금씩 그 모습이 구체화되었고, 리틀존이나 아치같은 로빈훗의 친구들도 캐릭터화되었다고.

 

 

2. 필립, 양필립.

 

요섭이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원래는 로빈훗 역할로 제의가 들어왔었다고 한다. 그러면 좀 이상한 게, 지금의 로빈훗은 로빈과 필립과의 관계가 (유사)부자지간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우리 요섭이를 아버지 역할에 갖다 앉히려고 했던 것인데, 그게 너무나도 이상. -_-;;; 원작에 없던 필립 캐릭터를 만든 것이 아이돌을 캐스팅하기 위함이었다면, 당연히 필립 역으로 제의가 갔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잠시 추측을 해본다. 그러니까 2005년에 독일에서 초연이었다던  이 뮤지컬은 부제도 '사랑과 정의를 위하여'인 것만 봐도 로빈훗 원톱 주연의 액션활극이었던 것이다. 이 기획사의 전작인 조로나 아니면 몬테 크리스토와 많이 닮아 있는 지점이기에 회사 입장에서는 차별화를 둘 필요가 있었을 것 같고, 그것이 2015년 한국에서 초연되는 뮤지컬 로빈훗의 시크릿키 필립을 탄생시켰다는 그런 말씀. 여기에서 궁예질을 하자면, 로빈원탑물이었을 때 요섭이를 이미 점찍은 게 아닐까. 요섭이가 사랑과 우정에 배신당하고 복수를 하는 로빈의 캐릭터였다면, 그것도 나름 신선했겠지만, 그건 좀 나중에 해도 될 만한 역할이니까. 필립을 하겠다고 자청했던 요섭이의 신중한 안목이 빛을 발한 대목.)

 

나머지 필립은 볼 예정도 없지만, 그래도 상상을 좀 해보자면 슈퍼주니어 규현도 썩 잘 어울릴 것 같다. 라스에서 갈고 닦은 능글맞음이 1부에서 발군의 실력으로 발휘될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로빈과 함께 서도 밀리지 않는 신장(-_-) 그림이 좋을 것 같다. 조로에서 라몬 역을 맡았던 박성환 배우는 십대 후반을 연기하기엔 좀(....) 상상하고 싶지는 않지만, 뭐 일단 본인이 베이스로 가지고 있는 성격에 애교나 깨방정이 좀 있는 것 같으니까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을 것 같기도. 다만 2부에서 영국의 왕이 가져야 하는 카리스마를 표현하기에는 적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니까 세 필립은 모두 장단점을 고루 갖추고 있어서, 어느 하나가 특히 더 낫다, 이렇게 말하긴 힘든 것 같다.

 

요섭이는, 일단 철없는 애의 모습을 표현한 1부에 딱이다. 완전 자기 역할. 그 깨방정, 그 자유로움 그러나 그 안에 내재된 상식 (그레고리를 두고 왕재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직무유기라고 하는데, 인간애를 상식으로 탑재하고 있는 인간으로 길러냈다는 점에서 교육자의 본분은 다한 것이 아닌가. 거기다가 왕궁에서는 살아보지도 못했으면서 잠꼬대도 왕족 말투로 할 기세.ㅋㅋㅋ) 이런 것들이 요섭이에게 딱이다. 그리고 1부 마지막 곡 '새로운 태양'에서의 요섭이 목소리는 힐링 그 자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첫 마디 듣고 울 뻔 했네. T^T

 

그대들의 고통을 보았노라

성 안에서는 몰랐던 백성의 삶

이 가혹한 세상에 희생당한 아픔

숨겨야했던 눈물을 보았노라

모두 고개를 들고서

내 가슴의 진심 경청할 지어다

그대들의 새로운 왕의 약속

억울한 백성 없는

헐벗는 백성 없는

권리가 존중되며

자유가 소중한 나라

그대들이 바라는 (이곳에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겠노라

 

그러니 우리 나라 사극에 등장하는 왕자들이 극 초반에 궁 밖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는 거겠지. 그저 왕이 되기 싫었던 철부지 필립은 백성들의 소리를 다이렉트로(!) 듣고서는, 너무나 상식적으로 대오각성한다. 그래, 이게 상식이지. 백성을 편케 하는 것이 위정자의 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런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어서 그런지, 요섭이의 이 노래가 너무 동화같았다. (입 닥치라고 일갈을 날린 로빈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가. 아니, 뭐, 그렇다고 요섭이한테 입 닥치라고 생각했다는 거 아니고…….)

 

요섭이에게 난제는 2부인데, 나는 두 가지가 아쉽다. 하나는 요섭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요섭이가 해결 못하는 것이다. T^T 전자의 아쉬움은, 1부 마지막에 왕재의 자질을 스스로 깨달아 놓고,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길버트 앞에서 너무 여린 모습만 보여주던 장면에서 생긴다. 물론 자연인으로서 고작 열몇살에 불과한 필립이, 자신을 지켜주던 모든 이들이 사라진 순간에, 산전수전 다 겪은 길버트 앞에서 작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긴 한데, 인간적인 반응이 당연하다고 하면 세상 모든 드라마가 왜 생기는가 말이다. 최소한 아버지를 보호하며 길버트와 시선을 마주 하는 장면 정도까지는 연출이 되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아, 이건 요섭이가 해결 못하나? ㅠㅠ 길버트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울찔하며 고개를 숙이고 묶여 있는 아버지의 품으로 더 움츠러드는 모습은, 1부 마지막에서 보여준 선군으로서의 필립의 모습과 연결이 안 될 뿐더러, 뒤에 2부 필립의 하이라이트 넘버 '변명'을 부르는 모습과도 연결할 수가 없다. 결국 도망가지 않고 백성들의 왕으로 남아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기엔, 길버트와의 기 싸움에서 필립이 보여준 모습은 너무도 약한 것이기 때문에.

 

여튼 2부 '변명'에서는 진짜 깜놀할 포인트가 여럿 있는데, 하나는 액션을 소화하면서 음정박자발음이 하나도 뭉개지지 않는다는 거 (세상에!) 두번째는 뒤로 손이 묶인 채로 고음을 소화한다는 거 (어머, 저건 배우한테 진짜 몹쓸 짓인데, 요섭이 왜 이렇게 잘함? ㅋㅋㅋㅋㅋ) 세번째는 조이의 죽음을 목도한 필립의 리액션. 와나, 우리 요섭이 배우 됐네.

 

배우 하니까 또 뻘소리. 이 뮤지컬에서는 요섭이가 노래하는 부분이 많지 않다. 뭐 주인공이 로빈훗이니까 그럴 수 있지. 하지만 그러다보니 필요한 게 오히려 연기력인데, 그러니까 요섭이가 뮤지컬에서 본격적으로 연기 위주의 역할을 맡은 게 처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위화감 없이 그 역할에 녹아들어 있다니! 양요섭, 대단하다! 잘한다! 멋있다! 진짜 차례차례 성장하고 있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녀석이다. 이 단계들이 요섭이를 구성하고, 기복 따위 없는 실력의, 자랑스러운 가수가 될 테지.

 

잠깐 딴소리. 요섭이가 하는 역할은 왜 이렇게 아버지(혹은 유사아버지)를 찾는 씬이 많은가 몰라. 광화문연가에서는 어머니를 사랑한 남자의 죽음에 마치 아버지를 잃은 사람처럼 오열했었지. 요셉 어메이징은 아버지와 이별했다 재회하면서 오열하고, 조로에서는 아버지같았던 가르시아의 죽음 앞에서 무너진다. (풀하우스는 요섭이 뮤지컬 경력에서, 나한테는 언제나 열외-_-) 로빈훗에서도, 평생을 본 적이 없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절절한 정이 생길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아버지의 죽음에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울었다. 와, 요섭이가 그렇게 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기대 이상의 몰입에, 손에 땀이 다 났다.

 

후자의 아쉬움은 요섭이의 작은 체구에서 온다. (미안하다. -_ㅠ) 로빈이 필립의 품에서 평안을 찾아야 하는데, 182cm의 거구가 요섭이 품에 안겨 있으려니 그 불편함이, 관객석까지 전달되는 듯. (그래서 로빈이 화살을 두 번 쏜 건 아닐 거야. …….) 허부적대는 모습이 덜하려면, 세트 위가 아니라 차라리 바닥에서 로빈을 안는 게 나을 것 같은데.

 

 

3. 극 자체에 대한 평가는 몇 번 더 보고 나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한 번 써 봤는데,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아서, 더 생각해 본 후에 정리하기로.

 

 

 

[+] 대사 씹힌 건, 귀여웠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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